안내문 한 장을 쓰는 데 오래 걸리던 시절이 지나고 있습니다. AI에 몇 줄을 입력하면 제법 반듯한 문장이 나옵니다. 사업 소개서도, 회의 요약도, 홍보 문구도 그렇습니다. 작은 협동조합으로서는 반가운 변화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비슷한 문서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문서의 매끈함만으로는 우리 조합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때 다시 보게 되는 것이 현장 경험입니다. 어떤 주민은 공지를 읽고도 전화를 걸고, 어떤 이용자는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망설입니다. 같은 프로그램도 참여자의 생활 형편에 따라 시작 시간을 바꿔야 합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데에는 시간이 듭니다. 동네에서 오래 일한 조합이 가진 자산은 바로 그 시간 속에 있습니다.

반듯한 문장에 담기지 않는 사정

가령 돌봄 서비스를 안내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AI는 친절한 설명문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용자가 문자보다 전화를 편하게 여기는지, 가족에게 먼저 연락해도 되는지, 지난번 서비스 변경 때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는 따로 알아야 합니다. 현장의 사람은 그런 사정을 놓고 말의 순서와 연락 방법을 고릅니다. 이 예시는 특정 기관의 사례가 아니라 현장 판단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한 가정입니다.

협동조합이 경쟁력을 찾을 곳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민의 필요를 알고, 거래처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해하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일을 해 본 경험입니다. 그 안에는 잘된 사업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참여가 저조했던 교육, 늦어진 납품, 해결이 어려웠던 불만에도 다음 일을 바꿀 단서가 남아 있습니다.

AI가 일반적인 답을 빠르게 내놓을수록 이 구체적인 사정의 값어치는 커집니다. 도구의 성능이 비슷하다면, 무엇을 묻고 어떤 자료를 건네며 어디에서 답을 고칠지 아는 조직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장을 아는 사람은 AI가 만든 문장에서 빠진 조건을 발견합니다. “좋은 제안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할 근거도 갖고 있습니다.

경험은 많지만, 꺼내 쓸 수 있습니까

문제는 경험이 있다는 것과 조직이 그 경험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오래 일한 직원의 머릿속, 대표의 휴대전화, 개인 수첩에만 남아 있다면 새 직원에게 전하기 어렵습니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같은 질문이 다시 돌고, 몇 년 전 겪은 시행착오를 또 겪습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조합일수록 몇몇 사람의 기억과 헌신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두꺼운 매뉴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일이 끝난 뒤 무엇이 예상과 달랐는지, 왜 순서를 바꿨는지, 다음 담당자가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짧게 남기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행사 잘 끝남”이라는 기록보다 “평일 오전에는 참여가 어려워 토요일로 바꿨고, 전화 안내 후 신청이 늘었다”는 기록이 다음 사업에 도움이 됩니다. 실제 수치가 없으면 늘었다는 판단의 근거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남아 있는 기록함께 남길 사정다음에 쓸 곳
교육 사진과 참석자 수참여가 어려웠던 이유, 시간·안내 방법의 변경다음 교육의 모집과 운영
고객 문의와 처리 결과불편의 원인, 도움을 요청한 시점, 해결 조건응대 기준과 직원 교육
공동사업 회의록역할이 겹친 부분, 합의가 늦어진 이유다음 협업의 역할 분담

이 표는 기록을 정리하는 예시입니다. 개인정보가 섞인 상담 내용은 공유 범위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경험을 나눈다는 이유로 이용자의 사생활까지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맥락을 살리면서 개인을 식별할 정보는 덜어내는 일이 함께 가야 합니다.

AI는 경험이 전해지는 길을 넓힐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AI의 쓸모가 생깁니다. 여러 회의록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찾아 묶고, 긴 업무 기록을 새 직원이 읽을 수 있는 설명으로 정리하며, 승인된 사례를 바탕으로 문의 답변의 초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장 담당자는 그 초안에서 빠진 조건과 과장된 부분을 고칩니다.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부담이 줄면, 바빠서 미뤄 두었던 기록도 조금씩 쌓을 수 있습니다.

이 가능성은 연구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2025년 학술지에 실린 「Generative AI at Work」는 고객지원 직원 5,172명의 업무를 분석했습니다. AI 보조 도구를 사용했을 때 시간당 해결한 문의 건수가 평균 15% 증가했고, 효과는 경험과 숙련이 적은 직원에게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숙련된 직원의 일하는 방식이 다른 직원에게 전해지는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고객지원 업무에서 관찰된 AI 보조 효과시간당 해결 문의 건수 · AI 미사용 수준을 100으로 환산
AI 미사용 기준
100
AI 보조 사용
115
0지수 120

자료: Brynjolfsson·Li·Raymond, QJE (2025). 논문의 평균 효과 15%를 지수로 표현한 그래프입니다. 실제 전후 관측값이나 협동조합의 예상 효과가 아닙니다.

물론 고객지원 기업에서 나온 결과를 우리 조합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경험이 AI로 정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숙련자의 노하우를 조직 안에서 더 넓게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협동조합에서도 승인된 기록과 적절한 검토가 갖춰질 때 그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오래 일한 시간을 공동의 힘으로

협동조합에는 오랫동안 같은 동네와 같은 사람을 만나 온 조직이 많습니다. 이웃의 형편이 바뀌고 지역의 필요가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은 금방 복제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경쟁력이 되지는 않습니다. 경험을 꺼내 보고, 잘못된 판단도 돌아보며, 지금의 상황에 맞게 고쳐야 합니다. 새로 들어온 구성원의 질문이 오래된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AI를 도입할 때도 먼저 물을 것은 “어떤 도구를 살까”와 함께 “우리에게 무엇이 쌓여 있나”라는 질문입니다. 잘 해결한 문의 한 건, 주민의 참여를 바꾼 작은 조정, 협업이 어긋났던 이유를 꺼내 놓으면 됩니다. AI로 정리한 뒤 현장을 아는 사람이 다시 읽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은 다음 업무에 쓸 수 있는 지식으로 바뀝니다.

앞으로 반듯한 소개서를 만드는 일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래도 주민이 다시 찾아오는 이유, 거래처가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까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 믿음은 현장에서 쌓입니다. 협동조합이 AI 시대에 지켜야 할 경쟁력은 그 경험을 다음 사람에게, 다음 사업에 이어 주는 힘입니다. 기술은 그 길을 넓혀 줄 수 있습니다. 길의 출발점은 여전히 우리가 해 온 일입니다.

참고 자료

Erik Brynjolfsson, Danielle Li, Lindsey Raymond (2025), Generative AI at Work,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40(2), 889–942.

이 글의 현장 장면은 설명을 위한 가정이며, 협동조합에 대한 적용과 해석은 담쟁이의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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