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회사는 코닥이었습니다. 토스터만 한 크기에 흑백사진 한 장을 기록하는 데 약 23초가 걸렸고, 해상도는 0.01메가픽셀이었습니다. 미래는 이미 코닥의 연구실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승자는 코닥이 아니었습니다. 필름시장이 빠르게 사라진 뒤 코닥은 2012년 미국 연방파산법 제11장에 따른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2013년 사업용 이미징에 집중하는 기술회사로 구조조정을 마쳤습니다.
반면 같은 필름회사였던 후지필름은 헬스케어, 전자재료, 사무혁신과 이미징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변신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진사업을 이어가지만 더 이상 사진필름 하나에 생존을 맡기는 회사는 아닙니다.
코닥은 디지털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아는 것과 기존의 성공 방식을 바꾸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필름 한 통보다 현상과 인화에서 더 큰 수익이 났던 시대
필름산업의 전성기에는 카메라를 한 번 판매한 뒤에도 필름, 현상, 인화에서 수익이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고객이 사진을 많이 찍을수록 기업의 매출도 계속 늘어나는 구조였습니다.
코닥은 이 생태계를 매우 잘 운영했습니다. 필름과 인화지, 현상약품, 현상소와 유통망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성공은 강력한 경쟁력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디지털사진에서는 필름을 살 필요도, 매번 현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객에게는 더 편리했지만 코닥의 핵심 수익은 사라지는 변화였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해도 기존 필름사업만큼 높은 수익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10년 만에 10분의 1 아래로 줄어든 시장
후지필름 공식 역사에 따르면 세계 사진필름 수요는 2000년 정점을 찍은 뒤 2010년에는 정점의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서서히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주력사업의 기반이 한 세대 안에 거의 사라진 것입니다.
MARKET SHIFT
세계 사진필름 수요 지수
2000년 정점=100 · 후지필름 공식 자료 기준정확한 연도별 중간값은 임의로 추정하지 않았습니다. 공식 자료가 제시한 정점과 2010년의 범위만 비교했습니다.
이 정도의 변화 앞에서 기존 제품을 조금 개선하거나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조직이 무엇을 파는 회사인지, 어떤 능력을 가진 회사인지부터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두 회사는 같은 위기를 보고도 서로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SAME CRISIS, DIFFERENT QUESTION
“필름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
- 기존 수익모델과의 충돌
- 디지털 제품 중심의 대응
- 여러 전환 시도의 분산
어디에 다시 쓰일 수 있는가?
- 핵심 기술을 다시 분해
- 성장시장과 연결
- 사업구조 자체를 재편
코닥도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카메라와 이미지센서, 프린터와 온라인 사진서비스에 투자했고 새로운 사업을 찾았습니다. 연구에서는 코닥이 여러 영역에서 기술적 성과를 냈음에도, 이를 지속가능한 사업구조로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코닥은 변화를 거부해서 망했다”라는 한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존 사업의 수익기준과 조직구조가 새로운 사업을 평가하는 방식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는 점입니다.
후지필름은 필름이 아니라 필름 안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사진필름은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닙니다. 얇은 막 위에 여러 기능성 물질을 균일하게 바르는 정밀 코팅기술, 빛과 산화에 물질이 변하지 않도록 하는 안정화기술, 미세한 입자를 제어하는 나노분산기술, 콜라겐을 다뤄온 경험이 결합된 제품입니다.
후지필름은 자신을 ‘필름을 만드는 회사’로만 보지 않고 이러한 기술의 묶음을 가진 회사로 다시 해석했습니다. 사진필름 개발에서 쌓은 콜라겐과 나노분산기술은 화장품으로, 정밀 소재기술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재료로, 엑스레이 필름과 이미지 처리 경험은 의료영상과 헬스케어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혀 모르는 사업에 무작정 뛰어들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사업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을 분해하고,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시장의 문제를 찾아 연결했다는 점입니다.
작은 기업도 제품보다 능력을 먼저 기록해야 합니다
코닥과 후지필름의 이야기는 거대 제조기업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작은 기업과 협동조합도 현재 판매하는 상품이나 수행하는 사업명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락을 만드는 자활기업의 자산은 도시락 메뉴만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에 여러 주문을 맞추는 운영능력, 위생관리, 지역 식재료 공급망, 다양한 참여자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업무를 나누는 경험도 자산입니다. 교육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자산도 강의자료만이 아니라 참여자를 모집하고, 현장의 요구를 프로그램으로 바꾸며, 여러 강사를 조정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사업이 끝나거나 시장이 변할 때 상품만 바라보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품을 만들어 온 능력을 알고 있다면 새로운 고객과 사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직의 ‘필름 속 기술’을 찾는 네 가지 질문
- 지금 가장 많은 매출을 만드는 상품은 무엇인가?
현재의 핵심사업과 그 사업에 조직이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 그 상품을 잘 만들기 위해 축적한 능력은 무엇인가?
기술, 관계, 데이터, 운영방식, 신뢰와 현장경험을 제품에서 분리해 적어봅니다.
- 그 능력은 다른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익숙한 업종 밖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적용처를 찾습니다.
- 기존 사업이 새 시도를 막는 기준은 무엇인가?
현재 사업의 수익률과 절차를 그대로 적용해 가능성을 너무 일찍 포기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봅니다.
지켜야 할 것은 제품이 아니라 조직이 만드는 가치입니다
전환은 과거를 모두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후지필름은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카메라와 즉석사진 사업을 이어갑니다. 다만 사진필름에 조직 전체의 미래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작은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을 존중하되, 그 일의 형식과 조직의 존재이유를 구분해야 합니다. 반찬을 파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바쁜 주민이 건강한 한 끼를 먹도록 돕는 가치는 남을 수 있습니다. 대면교육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사람이 새로운 능력을 익혀 삶의 선택을 넓히도록 돕는 가치는 남습니다.
조직전환은 우리가 해 온 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래에도 쓸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코닥과 후지필름의 차이는 미래를 예측했느냐의 차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보유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산을 다시 정의하고, 기존 수익구조와 조직을 실제로 바꿀 수 있었느냐였습니다.

